답답한 청춘이라 했던가? 이제는 답답한 청소년이라 해야겠다. 꼴찌부터 일등까지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학교, 도시에서 시골까지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한국, 국가인권위의 새 인권영화 <시선 1318>은 학교 안팎에서 답답한 가슴을 부여안고 사는 청소년의 일상을 다섯 개의 시선에 담았다. 막 데뷔한 윤성호 감독부터 15년 넘게 영화를 만들어온 중견 이현승 감독까지 다섯 명의 감독이 성인이 아니라 ‘내가 만일 청소년’이라는 관점에서 만든 다섯 편의 단편은 저마다의 시선으로 청소년을 응시한다. 시선은 다르면서 같은 느낌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말하지 못하는 존재다. 어른들은 그들이 아직은 미성숙한 존재라는 이유로, 아직은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목소리를 차단한다. 그래서 그들의 가슴엔 못다 한 무엇이 쌓여 있다. 외국인 엄마와 함께 사는 「달리는 차은」의 차은이도, 역도부 소녀와 유학을 앞둔 소년의 얘기를 담은 「유.앤.미」의 소영이도 오랜 침묵 끝에 탄식처럼 내뱉는 한 마디는 우연히도 같다. “답답해….” 방은진 감독의 「진주는 공부중」의 전교 1등 진주도 1등 콤플렉스를 깊이 내면화해 답답하단 말조차하지 못하고, 이현승 감독의 「릴레이」의 여고생들도 무조건 너희(미성년)는 안 된다는 어른들의 논리에 항의해 보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철없는 소리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이렇게 문제아도 아니고 오히려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 노력하는 아이들은 저마다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를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선 1318>은 이전에 차별을 다뤘던 어떤 인권위 영화보다 심란하고 애틋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세상을 견디는 아이들의 속내는 어른들의 생각보다 깊고 복잡하다. 이렇게 복잡한 아이들의 마음을 감독들은 저마다의 스타일에 담았다. 「진주는 공부중」은 자칫 무거워지기 쉬운 성적이란 소재를 뮤지컬 형식을 통해 유쾌하게 풀어내며 <시선 1318>의 문을 연다. 여기서 일등인 박진주와 꼴찌인 마진주 ‘마빡 진주’의 시험을 통한 연대(?)에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란 사실이 21세기에도 유효함을 증명한다.

 반면에 윤성호 감독의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는 마치 인류학적 보고서 같다. 이 단편은 다양한 청소년이 쏟아내는 입말을 통해서 청소년 문화에 내재한 오늘의 사회를 드러낸다. 그 사이에 낀 「릴레이」는 바구니에 담긴 생명이 무엇인지가 드러나는 과정을 속도감 빠르게 쫓아가 결국엔 숨겨진 문제를 드러내는 학원 스릴러의 느낌이 넘치는 소동극이다. 여기에 전계수 감독의 「유.앤.미」, 김태용 감독의 「달리는 차은」은 무언가 자신의 말을 삼키며 살아온, 그러나 이제는 참기가 숨차서 말을 뱉어야 하는 10대들의 답답한 가슴을 응축한 드라마다.





인권영화의 장점은 역지사지. <시선 1318>은 아이들의 시선에서 출발하지만 단지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식의 투정에 갇히지 않는다. 다섯 개의 단편은 줄곧 청소년의 얘기를 하지만 청소년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릴레이」는 고교생 미혼모 문제를 다루지만 모든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권리의 문제로 확산되고,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는 청소년의 미래일지 모르는 88만 원 세대의 문제 그리고 청소년 안의 계급과 권력 문제도 슬며시 건드린다. 마지막 단편인 「달리는 차은」은 우리 안의 인종주의가 어떻게 아이들의 의식에도 영향을 끼치는지를 ‘외국인 엄마’를 통해 보여준다.

김태용 감독은 어촌에 사는 달리는 소녀 차은이를 통해서 국제결혼 가정 청소년이 겪는 현실뿐 아니라 첫사랑의 애틋하고 비릿한 냄새까지 잡아낸다. 묵묵한 차은이는 말을 아끼지만 소녀의 답답한 마음이 어둑한 시골길의 습기를 타고 전해진다. 도망가고 싶었던 엄마와 도망가고 싶은 딸이 서로를 보듬는 아름다운 영화다. 이렇게 <시선 1318>은 자칫 빠지기 쉬운 도시(혹은 서울) 중심주의를 벗어나 도시 바깥의 아이들 얘기도 담아 ‘도농 균형’도 잡았다. 다만 영화의 시선이 소녀에 치우쳐 소년의 목소리가 작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래도 「달려라 차은」 같은 빼어난 단편이 있는 <시선 1318>은 인권영화가 오랫동안 달려온 길에서 도달한 정점으로 보인다.





이 글의 출처는 http://www.humanrights.go.kr/hrmonthly/index.jsp 입니다.

Posted by 호제와 남주